당신이라는 안정제
- 김동영
p11 누군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채 바라보기만 할 수 있다면 내 마음은 훨씬 수월할 거예요. 마음 쓸 일도 더 줄어들테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그러려니 하며 평정심을 유지하기도 쉬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진짜를 놓치게 될 것 같아요. 삶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할 것 같고요. 멀리서 바라보면 편하지만 진짜 마음에는 닿을 수 없겠지요.
p48 모든 결심과 실천에 이유와 이성적 판단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유와 생각, 논리와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건 전적으로 "그래 지금 시작하자"고 결심하고 행동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뿐입니다.
p57-58 그는 지금보다 조금 더 가벼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점점 더 세상을 쉽게 여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그냥 별것 없어" 하고 간단히 넘겨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잊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 생각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지워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사라질 것"이라며 손바닥 위의 만지처럼 툭툭 날려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 안에서 솟아나는 욕망도 그냥 뚫고 지나갈 만큼 얇고 가벼운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인간 정말 싫어!" 하고 실컷 욕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더라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대수롭지 않게 느낄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제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마치 농담처럼 느껴지면 좋겠습니다. 흥분될 만큼 기쁜 일이 찾아와도, 내일이면 쉽게 사라져버릴 농담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삶에 찾아오는 슬픈 소식도 소소한 노래처럼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올이 성긴 그물처럼, 저를 스쳐가는 하나하나를 모두 다 느낄 수는 있어도, 어느 것도 붙잡아두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머니가 하나도 달리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그 어느 것도 담아둘 수 없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저란 사람이 점점 더 작아지고, 점점 더 가벼워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날 어쩔 수 없이 죽어야만 할 때, 아주 작은 불로도 제 모든 것을 태워 날려버릴 수 있도록 제 마음에 남겨진 것이 아주 적었으면 좋겠습니다.
p80 용기 없이는 창조적일 수 없다. 걱정과 염려를 극복하고, 하찮은 일상의 규범을 뛰어넘고, 공포를 짊어지고 가는 것은 창조적인 사람의 숙명이다. 열렬하게 연애에 빠져 사랑을 고백하거나 정신적 균형을 잃지 않은 채 자기 마음속 증오를 시인하는 것, 고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혼자서 먼길을 가는 것, 아무도 하지 않은 생각을 머리에 담아두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데에는 모두 용기가 필요하다.
p95 분명 이 세상은 불안정하고 그 위에 살고있는 우리들도 불안하다. 역사적인 큰 사건이든 아주 사소한 사건이든 어떤 계기를 통해 우리는 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괜찮을 거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단지 우리는 너무 연약할 뿐이다. 이 세계에서. 그리고 우리 인생에서.
p104 어쩌면 우리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누군가를 갈망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나를 받아들여 달라는, 내가 부족하고 흠결이 많아도 있는 그대로 인정해달라는 욕망은 한순간도 숨을 죽이지 않고 마음속 한구석에서 꿈틀대기 마련입니다.
p137 행복이라는 모호한 관념어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흐리게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행복해지고 싶다"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느낌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느낌과 그 느낌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간절히 원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나는 불행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 아프다"라고, "나는 행복하지 않다"가 아니라 "나는 지금 외롭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p160 '내 고통은 다른 사람의 그것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것이다'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의식적으로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너무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있거나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의 삐뚤어진 표현일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