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의 여섯 기둥 : 어떻게 나를 사랑할 것인가
- 너새니얼 브랜든
p2 우리는 건강한 자존감 없이는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실현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존중하지 않고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자기 정신을 믿지 못한다면, 그런 사회는 잠재력을 실현할 수 없다.
p4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에게 더 관대하고 정직하며, 적절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각이 가치 있다고 여기므로 명확성을 두려워하기보다 반기기 때문이다.
p4 자존감이 높을 수록 자신의 풍요로운 내면 세계의 감각을 반영해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더 강하게 느낀다. 반대로 자존감이 낮은 경우에는 자신을 '증명'하려는 욕구나 기계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살면서 자신을 망각하려는 욕구가 더 절박해진다.
p4 자존감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그저 기분을 좋게 해주기 때문만이 아니다. 지혜롭고 적절하게 도전과 기회에 응답하여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p4 건강한 자존감을 지닌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존경심, 관대함, 선의, 공정함을 보인다. 타인을 위협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자기 존중을 토대로 하여 상대방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그 관계가 악의적이고 적대적이라고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또 상대방에게 거부, 모욕, 배신을 당하리라고 습관적으로 예측하지 않는다.
p4 어둠은 어둠을, 빛은 빛을 불러들이게 마련이다. 건강한 자존감을 지닌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공허하고 의존적인 사람보다는 생기 있고 개방적인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p4 만약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무례, 학대, 착취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상대방에게도 무의식적으로 나의 이런 태도가 전달되어 그들도 내가 나를 평가하는 대로 나를 대할 것이다.
p4 우리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자존감을 지닌 사람에게서 편안함을 느끼는데, 이는 인간 관계에서도 중요한 원칙이다. 어떤 경우에는 정반대 성향이 서로를 끌어당기기도 하지만, 자존감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존감이 높은 이에게 호감을 느낀다. 자존감의 정도가 천양지차인 두 사람이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는 경우는 없다. 굉장히 지적인 사람과 우둔한 사람이 열정적으로 서로에게 빠져들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p5 존경할 만한 사람이나 인생의 기쁨과 모험을 함께할 만한 사람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나를 비난하지 않을 사람, 세상에 드러내는 얼굴인 나의 '페르소나 (persona)'에 감명받을 사람을 찾는다.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미개척지로 남는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인간 관계에서 실패를 거듭한다. 다시 말해, 관계에 실패하는 원인은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의 꿈이 본질적으로 불합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꿈을 지탱할 만한 자존감이 없는 탓이다.
p5 자신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의식적으로 제어하고 스스로 '멋진 사람'이라고 주장하더라도, 마음속 싶은 곳에 남아있는 빈약한 자기 개념이 관계를 좀먹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사랑을 파괴하는 것이다.
p5 내가 사랑스럽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에' 자기 개념 역시 뒤죽박죽이 된다. 나를 향한 그 사람의 감정은 진실이 아니며 지속될 수 없다. 믿을 수도 없다. 스스로 내가 사랑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받는 사랑은 밑 빠진 독에 붓는 물처럼 허망하다. 노력을 거듭하던 상대방은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만다.
p5 자신의 운명을 '아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과 현실이 일치하게끔 행동한다. 우리는 자신이 '아는 것'과 인식할 수 있는 현실이 다르면 불안해진다. 자신이 '아는 것'에는 의심이나 의문의 여지가 없으므로 현실과 자신이 '아는 것'이 다를 경우에는 현실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기 파괴'이다.
p5 그러나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 부족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즐기지 못하는 이에게는 그저 채워지지 않는 욕구만 있을 뿐, 타인에게 베풀 여유는 없다. 감정이 메마른 상태에서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을 (자신에 대한) 승인 또는 불승인의 원천으로만 여기기 쉽다.
p6 다른 사람이 이룬 성과 때문에 자신이 속 빈 강정이라는 사실이 드러날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온 세상이, 그리고 더 나쁘게는 스스로 나 자신이 얼마나 시시한 인간인지 알게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성취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자존감을 상징한다.
p7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우리에게 걸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우리가 무엇을 배우려고 노력할지 그리고 무엇을 이룰지가 결정된다.
p7 자신의 정신에 의심을 품는 사람은 자기 정신이 이룬 성과를 깎아내린다. 지적인 자기 주장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로 이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릴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지적 능력을 숨긴다. 눈에 띄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을 투명 인간으로 만들어버리고는 아무도 자신을 알아봐주지 않는다며 괴로워한다.
p8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적인 평가 기준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남보다 나은 존재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에 만족한다.
p9 조화로운 자존감을 지닌 사람의 원동력은 두려움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이들은 고통을 회피하지 않으며 행복을 마음껏 즐기려 한다. 자기 회피나 자기 정당화가 아니라 자기 표현을 목적으로 삼는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원동력이 된다.
p9 자신이 '충분하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목표라면, 그 계획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p10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자기 내면에 집중해야 한다. 또한 자기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기와 맞지 않는 가치에 휩쓸려 진정한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목표를 추구하기 쉽다. 스스로 생각하고, 재능을 기르고, 자기 삶의 일부인 선택과 가치관과 행동에 책임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에겐 현실에 기반을 둔 자기 신뢰가 필요하다.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자존감의 욕구는 더 절박해진다.
p14 어느 쪽이든 인간은 특정한 기준에 따라 자신을 평가한다.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나타나는 현실과 이상의 차이는 자기 존중에 상처를 입힌다. 그리하여 개인의 자아통합성은 자존감의 도덕적 측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실현하려 한다면 자신을 믿고 존중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자기 신뢰와 존중은 환상이나 자기 기만이 아니라 현실을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p15 자존감은 비판을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나 자신의 실수를 편안하게 인정하는 마음에서 드러난다. 자존감은 '완벽한 존재'의 이미지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여유롭고 자발적인 말과 행동에서 드러난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증거이다. 자존감은 언행과 겉모습, 목소리, 몸짓 사이의 조화에서 드러난다. 자존감은 새로운 생각과 경험, 삶의 가능성에 편견 없이 호기심을 보이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p15 자부심이나 자존감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간접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정신과 판단과 가치에 따라 사는 삶만큼 용감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보다 도전적이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한 일이 있는가? 자존감이야말로 자기 안의 영웅을 일깨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p15 자존감은 자신과 타인의 (공격적이지 않은) 자기 주장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에서 드러난다. 자존감은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능력에서 나타난다.
p16 건강한 자존감을 지닌 사람은 "제 잘못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지 않는다. 부인과 방어는 불안, 죄책감, 부족함, 수치심을 느낄 때 나타나는 특징들이다.
p16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은 건강한 자존감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즉 독립성은 건강한 자존감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이다. 자기 존재를 온전히 책임지는 습관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 행복으로 향하는 길이다.
p16 자신을 믿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열린 태도로 받아들이므로 현 상황과 무관한 성취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
p17 우리는 부정적 자기 이미지의 포로가 될 위험이 있다. 부정적 자기 이미지가 행동을 좌우하도록 놔두기도 한다. 스스로 자신을 평범하고 나약하며, 겁이 많고 무능한 사람이라고 규정하면 그러한 자기 평가가 고스란히 자신의 행동에 나타난다.
p18 자존감이 스스로 자신이 삶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고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경험하는 것이라면, 의식의 자기 긍정이자 정신의 자기 신뢰라면, 자신 외에는 어느 누구도 자존감을 키우거나 유지할 수 없다.
p18 타인이 자기 평가의 주된 원천이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첫째, 타인의 평가는 자존감에 도움이 안 된다. 둘째, 계속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다 보면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에 중독될 위험이 있다.
p18 자존감의 근원은 내면에 있으며, 타인이 아닌 자신의 행동에 달려 있다.
p18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 익숙하지 않은 것을 두려워한다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새로운 미개척지를 찾는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도전을 피하지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도전을 열망하고 요구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용셔받을 기회를 찾지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존경받을 기회를 찾는다.
p22 우리는 생각하기와 생각하지 않기, 현실에 대한 책임감과 책임 회피 사이에서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하면서 자기가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감을 잡아 간다. 이런 선택들은 우리는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선택들은 정신 깊은 곳에 쌓이는데, 그렇게 쌓인 결과가 바로 우리가 '자존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자존감은 스스로 손에 넣는 명성인 셈이다.
p22 의식적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이 지닌 능력이 어떤 것이든 간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자기 행동과 목적, 가치, 목표에 관련된 모든 것을 알고자 하며, 자신이 보고 아는 것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는 삶의 태도이다.
p25 다른 사람을 마주하는 동안 느끼는 감정을 알아차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의 행동과 반응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자신의 행동 유형을 알아차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이 원하는 결과로 이끌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을 구분하고, 도전이 필요한 유형을 가려내기 위해서이다. (행동 수정은 자동적으로 또는 '본능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면에서 들리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 (이를테면 부모님이나 종교적 권위자 같은)를 가려내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외부인의 영향력을 가려내고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와 타인의 목소리를 구분해서, 자율적 존재로서 나의 삶을 꾸려 가기 위해서이다.
p30 자기 수용은 변화와 성장의 전제 조건이다. 내가 저지른 실수를 똑바로 보고 내가 한 거이라고 받아들이면, 실수에서 자유롭게 배우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내가 저질렀다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실수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다.
p33 자기 자신이 살아갈 능력이 있고, 행복을 누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려면, 나라는 존재를 다스리는 통제감을 경험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의 행동과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꺼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는 곧 자신의 삶과 행복에 책임지는 것을 의미한다.
p34 건강한 자존감이 결여된 사람은 대게 '타인에게 사랑받는 것'을 자존감과 동일시한다.
p34 자존감은 내면에서 만들어진다. 그런 자존감을 높여줄 다른 누군가를 소극적으로 기다리는 자세는 스스로 자신에게 절망적인 인생을 선고하는 것과 다름없다.
p35 책임을 회피할수록 자존감은 훼손된다. 책임을 받아들여야만 자존감을 쌓을 수있다.
p37 나를 구하러 올 사람은 없다. 나에게 존재할 권리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무도 내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지 않는다. 내가 행동하지 않으면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p38 논리적이고 일관되게 자기 주장을 실천하는 것은 곧 내가 존재할 권리에 헌신하는 일이다. 이는 내 인생이 타인의 것이 아니며, 나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p38 스스로 안정감 있는 상태를 만드는 데에도 책임이 있다. 자존감을 해치는 가장 큰 원인은 이러한 책임감 때문에 느끼는 두려움이 아니라 그 두려움에 굴복하는 태도이다.
p39 자기 주장에는 삶에서 부딪치는 도전을 피하기보다 그것에 맞서 이겨내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대처 능력의 한계를 넓혀 나갈수록 자기 효능감과 자기 존중이 확장된다. 새로운 배움의 영역에 자신을 내맡긴다거나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일을 맡았을 때 개인의 능력은 강해진다. 더 넓은 우주로 자기 자신을 떠밀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자기 존재를 주장한다.
p40 친구가 묻는다. "영화 어땠어?" 그는 순간적으로 급습하는 두려움을 느낀다. 친구에게 '쿨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좋았지, 정말 감동적이었어."라고 사실대로 말할 생각은 없다. 결국 그는 덤덤하게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한다. “나쁘진 않았어." 젊은이는 지금 막 자기 따귀를 때렸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니, 그 사실을 의식적으로는 모른다. 그러나 상처받은 자존감은 똑똑히 알고 있다.
p41 목적 없는 삶은 우연에 휘둘리는 삶이다. 어떤 것의 가치를 판단할 기준이 없기 때문에 우연한 사건, 우연히 걸려 온 전화, 우연한 만남에 삶이 좌지우지되고 만다. 자신만의 분명한 방향을 결정할 결단력이 없다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코르크 마개처럼 외부의 힘에 흔들리게 마련이다. 우리는 주도적 삶보다 환경에 반응하는 삶을 사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표류자들이다.
p43 자존감의 근원은 성취가 아니다. 자존감은 우리가 내적으로 기량을 발휘하면서 목표를 성취할 수 있게 한다.
p43 일을 방패막이로 내세워 삶의 다른 영역 (이나 고통스러운 유년기의 기억)에서 느끼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회파하려 들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생산적인 일도 건강한 열정의 근원이 아니라 회피 전략, 즉 대면하기 두려운 현실에서 달아나 숨는 도피처가 되어버린다.
p44 의도적으로 꾸준히 친절을 베푸는 사람과 충동적으로 상냥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의 자존감은 매우 다르다.
p46 만일 내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거슬러 행동한다면, 내가 말해 온 가치들과 충동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내 판단에 어긋나게 행동하는 것이며, 내 정신을 배신하는 것이다. 위선이란 본질적으로 자신이 틀렸음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고, 나의 정신이 스스로를 부인하는 것이다. 자아 통합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나를 약화시키고 나의 자기 감각을 오염시킨다. 외부의 어떤 비난이다 거부도 이것만큼 내게 피해를 기치지는 못한다.
p47 자존감을 지키려면 개인의 책임 한계를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권한이 없다면 책임이 따르지 않으며, 책임이 없다면 자기 비난을 할 합당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후회할 수는 있다. 하지만 죄책감은 느끼지 않아도 된다.
p54 '난 충분해.'라는 말은 '나는 더 배울 것이 없고, 더 성장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나는 충분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면서 자존감을 기를 수는 없다. 아이에게 '넌 충분하지 않아.'라는 메세지를 전하는 것은 아이의 자존감을 밑바닥에서붙터 완전히 뒤엎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메시지를 받고도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아이는 없다.
p55 가시성을 느낄 때, 우리는 비유적으로 말해서 다른 사람과 내가 같은 현실, 같은 우주에 살고 있다고 느낀다. 가시성을 느끼지 못할 때, 우리는 서로 다른 현실을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모든 만족스러운 상호 작용에는 같은 현실에 살고 있다는 일치감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서로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을 수 없다.
p55 나는 나 자신을, 내 존재를 '객관적으로' 인지할 수 없다. 오로지 내적으로만, 개인의 고유한 관점에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만약 상대가 보이는 반응이 나의 내적 인식에 들어맞는다면, 그 상대는 내 존재를 객관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거울이 된다. 나는 너의 (적절한) 반응에 비친 나 자신을 본다.
p63 건강한 자존감을 지닌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의 능력과 성취를 부인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p64 지식 노동자의 시대가 필요로 하고 요구하는 사람은 로봇처럼 복종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다. 혁신하고, 창안하며, 자기 관리를 할 줄 알고 스스로 책임감 있게 움직이는 사람, 팀의 일원으로서 효율적으로 일하면서도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사람, 자긴의 힘과 능력이 도움이 된다는 자신감을 품은 사람이 필요하다.
p64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이고, 창조하는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