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 김동영
p21 내가 없더라도 내가 떠나온 그곳에선 여전히 찬란한 햇빛이 비치고, 새 계절이 올 것이며, 모두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오직 나만 홀로 떨어져 나왔으니 내가 그곳을 생각하는 만큼 누군가도 날 기억해주길 바랄 뿐. 하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내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도 세상은 어제와 같을 것이다. 단지 이렇게 조금, 아주 조금 변한 나 자신만 있을 뿐.
p63 내가 그렇게 불안했던 건, 내 눈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대책 없이 펼쳐진 풍경들앞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어차피 난 갈 곳을 미리 정해두지 않았기에 길을 잃을 일도 없었다. 하지만 난 바보처럼 자주 길을 잃었다. 망설임이, 불안함이 날 그렇게 만들었다. 정확한 목적지가 있었다면 오히려 찾아가기 쉬울지도 모르지만 목적지가 없었기에 난 길 위에서 항상 망설였고 자주 서성거렸다.
p66 "사람이 살아가면서 꼭 위로 높아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닌 것 같아. 옆으로 넓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 마치 바다처럼. 넌 지금 이 여행을 통해서 옆으로 넓어지고 있는 거야. 많은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보고, 그리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니까. 너무 걱정 마. 내가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너보다 높아졌다면, 넌 그들보다 더 넓어지고 있으니까."
p83 길은 언제나 우리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떠나는건 우리의 진심이야. 돈, 시간, 그리고 미래 따위를 생각하면 우린 아무데도 갈 수가 없으니. 네 얼굴을 닮은 꿈과 네 마음을 닮은 진심을 놓치지 않기를. 지금은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되려 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우리 모두 저마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꼭 찾아내길 바란다.
p94 살아가면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지금처럼 혼란스럽거나 불안하지 않겠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걸 모른 채 여기저기 헤매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울면서 달렸고, 어쩌면 당신도 나처럼 울면서 달리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p177 기억이 많은 사람은 혼자 오래 먼 길에서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만 있으면 조금은 초라해도 아무 상관 없다는 걸.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