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
- 이병률
여행은, 120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곳'을 찾아내는 일이며 언젠가 그곳을 꼭 한 번만이라도 다시 밟을 수 있으리란 기대를 키우는 일이며 만에 하나, 그렇게 되지 못한다 해도 그때 그 기억만으로 눈이 매워지는 일이다.
청춘을 가만두라. 흘러가는 대로, 혹은 그냥 닥치는 그대로. 청춘에 있어서만큼 사용법이란 없다. 파도처럼 닥치면 온 몸으로 받을 것이며 비갠 뒤의 푸른 하늘처럼 눈이 시리면 그냥 거기다 온 몸을 푹 담그면 그만이다. 주저하면 청춘이 아니다. 생각의 벽 안쪽에 갇혀 지내는 것도 청춘이 아니다. 괜히 자기 자신을 탓하거나 그도 아니면 남을 탓하는 것도 청춘의 임무가 아니다. 청춘은 운동장이다. 눈길 줄 데가 많은 번화가이며 마음 들떠 어쩔 줄 모르는 소풍날이다. 가끔, 나의 청춘을 돌아볼 때마다 여전히 가슴 두근거리는 이유는 아무거나 낙서를 해도 괜찮은 도화지, 그것도 끝도 없이 펼쳐진 거대한 도화지가 떠올려져서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질러야 할지를 모르는 하얀 도화지 앞에서의 두근거림이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결한 감정이며 동시에 인생에 있어 몇 번 안 되는 기회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청춘은 방해받는 것 투성이다. '하지말라'는 말들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야 함으로 느낄 수도, 만날 수도, 가질 수도 없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느껴야 하는 것, 만나야 하는 것, 사력을 다해 가져야 하는 것. 그래서 반드시 행복해야 하는 것, 그것이 청춘이다.
그러니 문 앞에 서서 이 문 안에 무엇이 있을지, 무슨 일이 생길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시간을 써버리면 안 된다. 그냥 설렘의 기운으로 힘껏 문을 열면 된다. 그때 쏟아지는 봄빛과 봄기운과 봄 햇살을 양팔 벌려 힘껏 껴안을 수 있다면 그것이 청춘이다. 그래서 청춘을 봄이라 한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젊은 여행자들 중에는 상상력으로 단련되어 있는 친구들이 많다. 낯선 것에 온 몸을 빠뜨려 흠씬 몸을 적실 준비를 하고 상상할 꺼리들을 채집하러, 머리와 어깨에 힘을 빼고 상상력을 배우러 기차를 탄 것이다. 그들은 세상의 '잣대'나 '기준'들이 가장 더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과 풍경으로 끓어 넘치는 세상의 순간순간들을 잘 기워내 세상 풍파를 막아낼 양탄자를 만든다. 상상력은 한 뼘의 사고를 한 품의 사고로 확장시키며 사람을 단단하게 한다. 상상력만을 아픈 사람 앞에 바다를 데려다 보여 줄 수도 있으며, 힘겨운 하루하루의 창 밖에 소나무 한 그루씩을 심을 수 있다. 그러나 떠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기갈 들린 사람처럼 천박해 보여도 좋다. 떠나서만큼은 닥치는 일들을 받아내기 위해 조금 무모해져도 좋다. 세상은 눈을 맞추기만 해도 눈 속으로 번져들 설렘과 환상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괜찮다. 여행은 당신의 그런 사소한 취향을 다려 펴주는 대신 크고도, 굵직한 취향만 남게 할 테니.
청년은 대답하기를, 자신의 직업은 파리를 여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파리 토박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파리를 여행하는 게 일이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이를테면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난 사랑하지 못하는가, 하고 함부로 생각하지 마라. 그건 당신이 사랑을 '누구나, 언제나 하는 흔한 것' 가운데 하나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왜 나는, 잘하는 것 하나 없으면서 사랑조차도 못하는가, 하고 자신을 못마땅해하지 마라. 그건 당신이 사랑을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흔한 것도 의무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이다. 사랑해라,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잃어온 것보가 더 많은 것을 잃게될 것이다. 사랑해라, 사랑하고 있을 때만 당신은 비로소 당신이며, 아름다운 유일한 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