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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그림 : 그림 속에 담겨 있는 나와 당신의 이야기 | 우지현

hannahsienne 2023. 2. 6. 08:54

 

 

나의 사적인 그림 : 그림 속에 담겨 있는 나와 당신의 이야기
- 우지현




p9 사적인 것의 귀중함을 생각한다. 개인의 사적인 영역은 작고 하찮은 부분이 아니라 그 어떤 요건보다 거대할 수 있고 살의 결정적 조건일 수 있다. 사람은 사적인 연유로 고통받고 사적인 이유로 살아간다. 사적인 관계 때문에 괴로워하고 사적인 사이에서 힘을 얻는다. 사적인 문제로 인해 무너지고 사적인 희망으로부터 구원받는다. 사적인 추억, 사적인 공간, 사적인 습관이나 관심사, 사적인 물건 혹은 대상, 사적인 의문들, 사적인 욕망과 감정, 사적인 깨달음, 사적인 관계 등 오직 사적인 것만이 인간을 파괴할 수도 구할 수도 있다. 사적인 요소는 기실 삶의 전부다.

 

 

p21 서로가 전부였던 사랑도 점점 멀어지고, 견고했던 우정도 조금씩 느슨해진다. 첫눈에 반했던 그림도 어연간 별 감흥이 없고, 홀딱 빠져들었던 책도 지루해진다. 영원히 지속되는 좋음이란 없는 것이다.

 

 

p23 호불호의 선후는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에 더 가깝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자세,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싫은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애중하는 대상을 지표 삼아 삶을 아름다운 쪽으로 끌고 가려는 의지 같은 것들. 결국 인생은 순간들의 합이 아니던가. 좋아하는 건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해버리는 게 현명하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그림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며 좋아하는 것들로 삶의 순간순간을 채워가는 것, 찰나의 기쁨을 충실히 누리는 것만이 최선이리라. 어차피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건 완벽한 삶이 아니라 완벽한 순간뿐일 테니.

 

 

나의 사적인 그림: 그림 속에 담겨 있는 나와 당신의 이야기 / 우지현

 

p24 취향만큼 자기 자신을 확고하게 드러내는 것이 또 있을까. 취향은 개인의 독자성을 드러내는 수단이자 독립적인 세계를 가꾸는 습관이다.

 

 

p26 자신의 취향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취향은 단순히 선호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끊임없이 나를 살피고 발견하고 이해하고 알아가는 일이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고유한 개성을 찾는 일, 은밀한 즐거움을 누릴 삶의 동반자를 만드는 일, 또 인생에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는 일이다. 입고 있는 옷, 손에 든 가방, 신발의 굽, 헤어스타일, 지갑의 크기와 색깔, 카드 내역서, 방의 벽지, 커피의 종류, 냉장고 속 식재료, 책장에 꽂힌 책, 플레이리스트, 자주 가는 카페, 대화의 주제 등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 취향이 묻어 있다. 취향은 한 개인의 생활방식, 심미안, 미적 감수성, 사고체계 정체성, 세계관이 발현된 축도다. 

 

 

p29-30 재미란 삶을 사랑하는 적극적인 태도다. 가만히 있어도 삶이 항상 신나고 기쁘기만 한 사람은 없다. 나에게 맞는 재미를 찾는 일은 여러 시행착오를 감수하고,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고, 지속적으로 용기를 낸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결실이다. 그들은 주저하지 않는 사람, 삶의 의의를 찾는 사람, 냉소보다 희망을 선택한 사람, 견디며 살아남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기로 결정한 사람이다. 

 

 

p40 나는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아이스크림 하나면 충분했던 그때의 나를 그리워한 것이다. 그 시절을 사랑한 것이다.

 

 

p65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니 어쩐지 아이러니하지만 또 한번 생각해 보면 얼마나 다행인가. 때론 싫은 이유가 좋은 이유가 되고 고난이 선물이 될 때도 있다는 건 고통과 절망으로부터 조금은 멀어지게 한다. 

 

나의 사적인 그림: 그림 속에 담겨 있는 나와 당신의 이야기 / 우지현

 

p75 조금의 빈틈도 없이 빽빽하게 채워진 그림은 감동은커녕 답답함만 전해줄 뿐이듯 삶에도 여백이 필요하다. 여백을 남긴다는 건 진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 즉 본질의 문제다. 본질을 아는 사람은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는다. 어쩌면 클림트도 자기만의 고유한 질서를 지키기 위해 아터제 호수를 찾았던 것이 아닐까. 

 

 

p78 영화가 건네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나만의 해석이 가능해지고 내 주변, 내 삶과 연관시켜 생각하게 된다. 하여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한다. 재시청으로 인해 더 넓게, 더 깊이, 더 다르게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복, 반복, 또 반복. 그럴 때 영화는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삶을 재구성하는 힘이 된다.

 

 

p101-102 우리는 때로 모르거나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남을 미워하고 비난한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지레 겁을 먹고 분노한다. 다 안다는 착각 속에 멋대로 단정하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판단은 신중하게, 비판은 더 신중하게 하는 것이 좋다. 하루를 살아야 그다음 하루가 온다는 것과 내가 내 장례식에 갈 수 없다는 것 말고는 천차만별인 삶일진대, 감히 누가 누구의 삶을 평가하거나 판정할 수 있을까. 타인의 삶에 함부로 판관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 각자는 모두 미지의 세계다.

 

 

p104 솔직담백한 사람이 좋다. 더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솔직담백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 이건 내면이 건강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생각해 보면 열등감을 분노로, 질투심을 비아냥댐으로, 또 사랑을 폭력으로 표출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다 마음이 온전하지 않기에 생기는 일들이다. 

 

 

p121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긍정적인 작용을 하며 성장과 발전에 이바지하는 사이. 일방적인 주고받음이 아니라 상호교류와 소통을 통해 신뢰를 쌓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반자. 비슷한 만큼 다르기도 해서 되레 상대에게 끌리고 서로 간의 차이로 인해 더 많이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지지자. 때에 따라 밀고 당기며 연대하고 협력하는 파트너. 그것이 친구이건 연인이건 가족이건 라이벌이건 그런 존개가 하나쯤 있으면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서로 갈마들며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 온 그림과 영화처럼. 

 

 

p122-123 배움은 인생에 있어 필수적이다. 그것이 책에서 축적된 지식이건, 치열하게 연마한 기술이건, 타인과의 관계에서 깨달은 교훈이건 사람은 무언가를 배우며 살아간다.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은 삶의 열정이 되고, 피나는 노력을 통해 얻은 경험은 성장의 발판이 되며, 시도함으로써 얻은 성취는 자존의 근거이자 희망의 증거가 된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 나의 세계를 확장하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의 나를 만든다. 

 

 

p128 진심을 다해 말하고 충실하게 상대의 말을 들어야만 서로에게 겨우 닿을 수 있다. 딱 그 정도까지 말하면 딱 그 정도에서 돌아서게 되고 잠자코 있으면 영원히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말해야 한다. 자꾸 입 밖으로 내뱉어 전해야 한다. 당신을 응원한다고, 이해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이란 없다.

 

 

p138 다소 나이브한 생각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의 방황을 지지한다. 마음이 너무 어지럽고 복잡하다면 그래서 만사가 헛되고 혼란스럽다면, 조금 방황해도 되지 않을까. 살다 보면 누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기가 있고, 역으로 그것밖에는 할 수 없는 시간도 있다. 비록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 

 

 

p154 뮌헨에서의 일이 그러했듯 나는 아주 작은 것까지 세세하게 계획하거나 계산하지 않고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가져다줄 우연한 행복 같은 것을 기다리며 살고 싶다. 예측할 수 없어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므로.

 

 

p161 [...] 삶은 말의 결과다. 평소 습관처럼 쓰는 말, 속으로 되뇌는 말, 별 뜻 없이 하는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 

 

 

나의 사적인 그림: 그림 속에 담겨 있는 나와 당신의 이야기 / 우지현

 

p176 내가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고 스스로를 작위적으로 만들지 않을 때 사람은 한없이 충만해진다. 내 안의 두려움을 가려주던 연출과 장식을 덜어내고 투명해질 대 사람은 자유로워진다. 인위적인 계산이나 꾸밈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마음, 감추거나 숨기려고 하기보다 결점마저 당당히 드러내는 용기, 편안하고 너그러운 태도에서 오는 세련됨. 나는 항상 이런 자연스러움에 끌린다. 자연스러운 것만큼 근사하고 매력적인 존재도 없다.

 

 

p193-194 의심하지 않는 신념처럼 무서운 게 없고 성찰하지 않는 인간처럼 시시한 게 없다. 뚜렷한 주관과 맹목적 고집은 한끝 차이며 소신의 다른 이름은 몽니일 수 있다. 고착화된 시선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세상을 관조하는 것, 스스로 만든 틀에서 탈피해 낯선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 이런 태도야말로 나이가 들면서 갖추어야 할 덕목일 테다. 열린 자세를 견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인생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p200 암만 잘 이해한다고 해도 우리가 아는 건 일부분에 불과하다. 결국 안다는 건 모른다는 것을 전제할 수 있는 태도가 아닐까. 자칫 안다고 생각하는 모르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부단히 주의해야 한다. 내가 아는 건 나는 여전히, 어쩌면 영원히 모른다는 것뿐. 

 

 

p203 포기는 실패가 아니다. 용기다. 어떤 일을 지속하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쏟아부은 시간이 아까워서, 노력한 게 억울해서, 또는 내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대로 움켜잡고 있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때로 우리는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의 발목을 붙잡는 건 아닌지,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p209 진부한 체념에 파묻히기보다 나를 구원할 작은 기쁨을 찾고, 온갖 시련이 닥쳐도 삶의 존엄과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묵묵히 인생을 꾸려가다 보면 활짝 핀 꽃과 마주할 그날이 오리라 믿는다.

 

 

p218-219 예술은 사방에 존재하며 먹고 마시고 웃고 말하고 즐기면서 살아가는 전부가 예술이다. 다시 말해 예술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예술이다. 예술가만 예술을 하라는 법이 없듯이 제각각 예술가가 되어 자신의 삶을 찬란하게 채워갔으면 좋겠다. 최고의 예술품은 저마다의 삶이니 말이다. 한 사람의 삶이 그 어떤 예술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