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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 채사장

hannahsienne 2023. 1. 3. 01:56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 
나, 타인, 세계를 이어주는 40가지 눈부신 이야기
- 채사장



 

p21 각자가 자신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여 마지막에 반드시 얻게 될 삶에 대한 이해. 그 궁극의 지식은 몇몇의 책에서 단번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오해와 노년의 오만과 무수한 시행착오와 상실과 고통과, 그 속에서도 기어코 피어나는 작은 행복과 사랑하는 이의 부드러운 손과 깊은 눈동자와 내면의 고요. 그것들 속에서 우리는 삼각형과 사각형을 얻을 것이고, 마침내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삶이라는 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될 것이다. 

 

 

p28 그렇다면 너는 왜 사람들을 만나고 말하고 글을 쓰는가. 그것은 내가 믿기 때문이다. 내 외부에 나처럼 자의식을 가진 타인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고, 그에게 어느 정도나마 닿을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다. 그리고 만약 종교의 본질이 믿음이라면, 나는 타인에 대한 종교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이 존재하길 바란다. 내 눈앞에 드러나는 육체라는 껍질을 넘어 저 외부에 당신의 의식이, 세계의 또 다른 관찰자가 실제하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이 존재하길 바란다. 내 눈 앞에 드러나는 육체라는 껍질을 넘어 저 외부에 당신의 의식이, 세계의 또 다른 관찰자가 실제하기를 바란다.



p34 폭풍같은 시간을 함께하고 결국은 다시 혼자가 된 사람의 눈동자가 더 깊어진 까닭은, 이제 그의 세계는 휩쓸고 지나간 다른 세계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더 풍요로워지며,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워진다.

 

 

p84 세상이 나에게 골라보라며 펼쳐주는 것들. 진로, 직업, 사업, 종교, 신념, 목표, 미래, 세상은 한 번도 당신에게 단 한가지만을 골라 그것에만 매진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반면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평생 먹고살 수 있는 하나의 전문직을 가져라', '평생 의지할 수 있는 하나의 종교를 가져라',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최선을 다하라', '언제나 노력하고 나태해지지 말라' 하고 말하는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 이들은 자신에게 그것밖에는 없는 빈곤하고 겁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p85 당신 앞에 세상은 하나의 좁은 길이 아니라 들판처럼 열려 있고, 당신이 보아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어딘가의 목표점이 아니라 지금 딛고 서 있는 그 들판이다. 발아래 풀꽃들과 주위의 나비들과 시원해진 바람과 낯선 풍경들. 이제 여행자의 눈으로 그것들을 볼 시간이다.

 

 

p95 집착 때문이다. 나의 신체와 내가 가진 것에 마음이 쏠려 한시도 잊지 못하고 매달리기 때문이다. 나의 몸과 나에게 연결된 것들은 너무나 소중하고 유일한 것이라서 그것이 어찌 될까 봐 조마조마해 하고, 움켜쥐려 하고, 끝내 감싸 안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통이 된다. 살아간다는 것이 생각보다 버거운 이유, 내 삶이라는 게 남의 삶보다 더 고된 이유, 내가 손에 쥔 것이란 남이 가진 것처럼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이유, 나의 삶은 이상하게 번잡하고 고통스러웠던 모든 이유는 그래서였던 것이다.

 

 

p99 자아의 내면 세계에서 시간은 우리의 상식처럼 하나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사람은 자기만의 시간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이는 현재에 살지만 다른 이는 과거에 살고, 또 다른 이는 미래에 산다.

 

 

p103 '부재를 살아가는 사람의 삶'과 '존재를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같을 수는 없음을. 부재에 대한 사유는 현재의 나를 무기력하게 잠식하는 동시에, 나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갈구하게 하는 유일한 동력이 된다.

 

 

p111 물질은 물론 중요하다. 근현대가 만들어놓은 기술과 과학의 눈부신 성과, 자본주의가 이룩한 거대한 풍요, 그것은 우리를 압도한다. 눈에 보이는 것과 만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학문의 체계를 세울 수 있고, 인류의 미래를 계획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당신은 안다. 물질적 풍요만으로 당신을 설명할 수 없음을, 당신의 깊은 내면은 이미 알고 있다.

 

 

p128 나이가 든다는 건 다행이다. 어린 날의 들뜸과 걱정은 가라앉고, 섬세함은 무뎌지고, 무거움은 가벼워진다. 죄책감은 줄어가고, 헛된 희망은 사라지고, 안타까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나는 다만 고마웠다. 연인의 불안을 나누어 지고 젊고 아름다운 시간을 함께해준 그녀에게 다만 고맙다고 느낄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에는 조금 부끄러웠다. 그렇게 무거워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무엇이 그리 무겁다고 세상의 짐을 혼자 다 짊어진 사람처럼 엄살을 부렸던 것일까. 운명이라거나 의무라거나 책임이라거나, 그런 것들은 생각처럼 무겁거나 슬픈 것이 아닌지도 모르는데.

 

 

p139 그래서 '이야기'는 통증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완화된 방식으로 우리가 세계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비로소 작은 개인을 거대한 세계와 관계 맺을 수 있게 한다.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분야를 탐구하고, 낯선 영화를 보고, 여러 음악을 듣고, 세계에 대한 깊은 호기심을 가진 사람일수록 예민한 감수성으로 보편적 윤리와 은폐된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야기, 그것이 세계의 둘레와 경계까지 나의 감각을 확장하고, 결국 세계의 고통을 내가 감지하게 한다.

 

 

p156-157 우리는 세계를 점검해봐야 한다. 나의 세계 안에는 무엇이 있고, 밖에는 무엇이 있는지, 혹시 나는 고집스레 단일한 진리관을 움켜쥐고 빈곤하게도 이것만으로 평생을 살아가려고 작정했던 것은 아닌지를. 또한 외부의 내가 모르는 많은 것을 단순히 비진리라 규정해버림으로써 그것을 안 봐도 괜찮은 것들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던 것은 아닌지를. 당신이 진정으로 진리를 탐구하려는 사람이라면 점검해봐야 한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의 세계가 흑과 백으로 칠해진 것이 아니라, 다채로운 색깔로 빛나게 되기를 기대한다.

 

 

p169 언어의 불완전성, 언어의 태생적 한계. 어쩌면 이러한 부족함이 자유오 즐거움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책과 시를 읽는 이유,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하고 즐겁게 하는 이유는 저자의 생각이 오롯이 나에게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에 개입하고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언어의 비좁은 통로는 열린 장이 된다. 저자와 독자는 그곳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각자 깊게 생각하며, 비로소 작품의 의미를 함께 부여한다.

 

 

p172 말과 글은 간결해도 충분하다. 꾸미거나 덧붙일 필요가 없다. 수식어를 걷어내고 정갈하게 정돈된 언어를 정확히 구사한다면 인위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나의 언어는 타인의 가슴에 강렬하게 박힌다.

 

 

p187 폭풍같이 몰아치는 수많은 타인의 말을 헤치고, 그것에 마음 뺏기지 않으면서, 다만 내가 처음 가고자 했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