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일까
- 알랭드 보통
p8 상대의 짙은 눈빛이나 세련된 정신세계 때문이 아니라 저녁 내내 혼자 일기 수첩이나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서 연애를 하는 것은 낭만적인 사랑 개념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자기 문제를 홀로 직시하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의 문제를 끌어들이는 것보다 더 혐오스런 일이 있을까?
p16 늘 그렇듯 머릿속이 복잡해. 이 안쪽이 피곤해.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겉보기에는 흥미로운 일들을 하는데도 마음에 와 닿지가 않아.
p31 앨리스는 혼자 저녁을 먹으면서, 언젠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날이 오기를 갈망했다. 누군가 그녀의 작은 부분들을 제대로 봐주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달에 가거나 대통령이 되지 않더라도 그녀의 삶이 특별한 이유를 알 수 있을텐데.
p36 영화가 '나만 이런 감정을 겪으며 이 거리를 보고 카페에 앉아 있는 게 아니야.'하는 생각을 통해 고립감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듯이, 사랑은 그녀가 '당신도 느끼나요? 정말 근사하죠. 할 때 내가 바로 그런 생각을 했어요.'하고 속삭일 수 있는 사람을 희망하게 했다. 이것이 바로, 한 영혼이 다른 사람의 영혼과 미묘하게 닮았음을 발견한다는 것의 실체다.
p42 그녀는 좀 빗나가더라도 자신의 기분을 잘 짚어주는 남자에게 마음이 끌리는 편이었다. 눈을 똑바로 보면서, 오래 안 사이는 아니지만 그녀가 독특한 감수성을 가진 여자임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앨리스는 그 정도로 냉소적이지 않았다.
p95 타인의 도움 없이도 좋고 싫은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수지에게는 부러움을 살 만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녀는 음식 비평가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작은 폴란드 식당을 런던 최고로 꼽았고, 세상이 칭찬하거나 관심을 쏟지 않는 남자라도 사랑했다. 기꺼이 여론을 따르는 앨리스는, 남들이 부러워할 남자를 만나려면 세련된 레스토랑의 한구석에 지루한 얼굴로 앉은 금발 미인들에 대해 심술궂지만 정확하게 비평하는 일을 삼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p368 사람을 끊임없이 봐도, 새로운 인상이 생기는 경우는 별로 없다. 새로운 인상을 받기보다는 편견을 확인하는 게 고작이다. 우리는 겨우 몇 단계로만 사람을 그린다.